경제

[심층] “활주로 없는 공항터미널 불가능”… 반쪽 예산에 멈춘 TK신공항, 포항 ‘트라이포트’ 꿈도 묶였다

군공항 예산 ‘전액 삭감’에 민간공항 국비 318억도 ‘무용지물’ 위기… 선(先) 군공항 건설 없인 민간공항 착공 불가… 2030년 개항 ‘물거품’… 포항 이차전지 물류 경쟁력 ‘치명타’… SOC 예산 도미노 삭감 공포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대구경북(TK)신공항 건설의 핵심 동력인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 2795억 원이 전액 미반영되면서 2030년 개항 목표가 사실상 무산됐다.

 

특히 민간공항 건설을 위한 국비 318억 원은 가까스로 확보됐음에도 불구하고, 공항 건설의 특수성 탓에 군공항 착공 없이는 단 한 푼도 집행할 수 없는 ‘식물 예산’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대구를 넘어 경북 제1의 산업도시 포항을 지탱하는 ‘트라이포트(Tri-port, 공항·항만·철도)’ 전략마저 첫 단추부터 어긋나며 지역 경제계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6일 기획재정부와 대구시 등에 따르면, 이번 예산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자금 부족이 아닌 ‘공정의 선후(先後) 관계 붕괴’에 있다.

 

TK신공항은 군(軍)공항과 민간공항이 활주로를 함께 쓰는 ‘민·군 겸용 공항’이다.

 

사업 구조상 군공항(K-2)을 건설하는 주체가 활주로, 관제탑, 유도로 등 공항의 핵심 뼈대를 먼저 만들어야만, 국토교통부가 그 위에 여객 터미널과 주차장 등 민간 시설을 얹을 수 있다.

 

문제는 뼈대를 만들 군공항 예산(대구시 융자 신청분)은 거절당하고, 내부 인테리어 격인 민간공항 예산만 반영됐다는 점이다.

 

토목 전문가들은 “활주로가 닦이지 않은 허허벌판에 여객 터미널만 덩그러니 지을 수는 없다”며 “군공항 사업이 첫 삽을 뜨지 못하면 확보된 민간공항 예산 318억 원은 규정상 집행이 불가능해 불용(不用) 처리되거나 하염없이 이월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공항 건설 전체가 ‘올스톱’ 된 셈이다.

 

이러한 ‘시계제로’ 상황은 포항시의 미래 산업 지형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포항은 이차전지 특화단지와 영일만항을 양 날개로, 신공항을 연결고리 삼아 ‘글로벌 물류 허브’로 도약하려던 참이었다.

 

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 등 영일만산단 입주 기업들은 항공 운송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현재 이들은 수출 물량을 인천공항까지 육로로 4시간 이상 실어 나르고 있다.

 

포항 산업계는 TK신공항이 개항하면 공항 접근성이 40분대로 단축되어 연간 수천억 원의 물류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공기 지연이 확정되면서 기한도 없이 고비용·저효율의 물류 구조를 감내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중국발 저가 공세로 원가 경쟁력이 절실한 시점에 치명적인 악재를 만난 것이다.

 

물류 업계 관계자는 “포항시가 구상한 ‘Sea & Air(해상-항공 복합운송)’ 전략은 영일만항으로 들어온 화물을 신공항을 통해 전 세계로, 반대로 공항 화물을 항만으로 보내는 것이 핵심”이라며 “공항이라는 한 축이 무너지면 영일만항은 단순 배후 항만에 머물게 되고, 글로벌 물류 기업 유치도 물 건너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공항 지연이 포항을 연결하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의 ‘도미노 삭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추진 중인 ‘대구경북선 철도(서대구~신공항~의성)’와 ‘포항~신공항 고속도로’ 등 광역 교통망 사업은 모두 ‘신공항 개항’을 전제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거나 계획된 사업들이다.

 

기재부 예산 심의 과정에서 모체(母體)인 공항 건설이 지연되면, 접속 도로와 철도 예산을 먼저 투입할 명분은 사라진다.

 

“공항이 없는데 길을 왜 먼저 닦느냐”는 논리에 부딪혀 포항과 내륙을 잇는 교통망 확충 사업 전체가 줄줄이 보류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2026년 준공을 앞둔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POEX)의 흥행에도 찬물을 끼얹는 결과로 이어진다.

 

지역 정가와 경제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구시의 경우 “정부가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사업을 못 한다”며 배수진을 친 상황에서, 포항시 역시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남억 경북도 공항투자본부장은 “정부가 목표로 하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대구경북공항 건설은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경제 전문가는 “포항시는 신공항 지연과 별개로, 연결 철도망과 고속도로 건설은 계획대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분리 대응’ 논리를 개발해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며 “이차전지 기업들의 물류비 손실을 보전해 줄 한시적 국비 지원책 마련도 시급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