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심층분석] "혁신은 사라지고 아파트만 남았다"... 포항 기업혁신파크, '5,800세대 폭탄'에 지역사회 우려 확산

4일 환경영향평가 공청회, 환경이슈 성토... "주거 비율 67%, 무늬만 기업도시" ... 펜타시티 등 인근 대비 공공용지 턱없이 부족... '수익성'에 매몰된 국책사업 비판 ... 발암물질·고압선 '안전 리스크'에 인근 조합 '공멸 우려'까지

포항시 북구 흥해읍종합복지센터에서 4일 열린 '포항 글로벌 기업혁신파크' 환경영향평가 공청회장은 기대감 대신 환경이슈 등을 묻는 성토의 장으로 변질됐다.

 

정부가 지역 소멸을 막고 기업 주도의 지방 시대를 열겠다며 야심 차게 선정한 '기업혁신파크 선도사업'이 막바지 행정 절차인 통합개발계획 승인을 목전에 두고 거센 역풍을 맞았기 때문이다.

 

당초 한동대학교와 기업들이 손잡고 '산학연 융합 도시'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은 화려했다.

 

그러나 이날 뚜껑을 열어본 구체적인 토지이용계획안은 '혁신'이라는 간판을 내건 대규모 '부동산 개발 사업'에 가깝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기형적 주거 비율 논란

 

논란의 핵심은 기형적으로 높게 책정된 주거 및 분양 용지 비율이다.

 

 '포항 글로벌 기업혁신파크'는 전체 부지(약 64만㎡) 중 아파트와 주상복합 등이 들어설 주거·복합용지는 무려 67.4%(약 43만7천㎡)에 달한다.

 

반면 도로, 공원, 녹지 등 주민 삶의 질과 직결된 기반시설용지는 32.6%에 불과하다.

 

이는 인근의 포항 펜타시티(42.8%)나 KTX신도시(42.1%)가 공공용지를 40% 이상 확보한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지역 경제계는 "산업 생태계 조성이 주목적인 사업에서 아파트 지을 땅이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한다는 것은 주객전도(主客顚倒)"라며 "사업 시행자인 한동대와 민간 컨소시엄이 수익성 확보라는 현실론 뒤에 숨어 공공성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실상 기업 지원 시설은 명분일 뿐, 5800세대에 달하는 대규모 분양 사업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 발암물질 날아오고 머리 위엔 고압선... '환경 리스크' 뇌관

 

이날 공청회에서 지역 언론과 환경단체가 제기한 '안전성'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사업 부지는 이차전지 소재 공장이 밀집한 영일만 4일반산업단지와 인접해 있다.

 

공단에서 배출될 가능성이 있는 포름알데히드, 니켈 등 1급 발암물질 노출 우려가 상존하는 곳에 5천 세대가 넘는 주거 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여기에 15만4천 볼트(154kV) 초고압 송전선로가 학교 예정지와 아파트 단지를 관통하거나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확인돼 주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주민들은 "지중화 계획이나 명확한 이격 거리 확보 없이 아이들이 다닐 학교를 짓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며 강력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환경영향평가 초안에 이러한 위해도 평가가 부실하게 반영됐다는 지적까지 더해지며, 환경 문제는 단순 민원을 넘어 사업 승인의 최대 걸림돌로 부상했다.

 

◆ 미분양 무덤 포항, '5천 세대 폭탄' 감당 가능한가

 

무엇보다 지역 부동산 시장이 느끼는 공포감은 '재앙' 수준이다.

 

포항, 특히 북구 흥해읍 일대는 이미 초곡지구, 이인지구, 펜타시티 등이 연이어 들어서며 공급 과잉으로 인한 소화불량을 앓고 있다.

 

미분양 물량이 적체된 상태에서 5800세대가 추가로 공급된다면 시장이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인근에서 민간 주도로 도시개발을 추진 중인 곡강지구, 푸른지구 조합 측의 반발은 생존권 투쟁에 가깝다.

 

이들은 "우리는 조합원들이 피땀 흘려 비용을 대는데, 바로 옆에 국비 지원과 인허가 혜택을 등에 업은 거대 공룡(혁신파크)이 들어오면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이는 민간 사업지구에 대한 사실상의 사형선고이자 공멸을 초래하는 길"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기업 유치를 위한 정주 여건 개선이라는 명분이 오히려 지역 부동산 생태계를 교란하는 '공급 폭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 시행 측은 2500억 원 이상의 민간 자본이 투입되는 구조상, 아파트 분양 수익 없이는 기업 유치와 인프라 구축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항변한다.

 

'직주락(職住樂)'을 실현하기 위해 충분한 주거 시설이 필수적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혁신'을 내세운 국책 사업이 수익 논리에 매몰되어 지역 사회의 안전과 공공성을 담보로 잡았다는 비판은 뼈아프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2026년 상반기 중 최종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과도한 주거 비율을 대폭 조정하고, 환경 안전망을 구축하는 등 정부 차원의 '솔로몬의 지혜'가 발휘되지 않는다면, 포항 글로벌 기업혁신파크는 첫 삽을 뜨기도 전에 지역 사회의 거센 저항에 직면해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